하나님 앞에서 정직하라!
사무엘상 15:1~9
서울에 살고 있는 아들 내외가 시골에 살고 계시던 부모님을 서울 집으로 모셨습니다. 서울 아들네 집으로 오신 부모님은 한동안은 아들 내외와 손주들의 환영 속에서 행복했습니다. 그러다 아들, 손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들 내외는 맞벌이로 바빴고 손주들은 공부하느라 바빴습니다. 마침내는 한 집에 살면서도 마치 다른 집에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됩니다. 기다려보기도 했습니다. 이해하려고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부모님은 아들네 집을 떠나 시골로 내려가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침략을 받아 나라가 멸망 중에 있을 때 선지자 에스겔이 마치 부모가 자식 집을 떠나는 것 같은 환상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계시던 자리이던 성전 한 가운데에서 성전 문지방으로 옮기십니다. 오늘 이 예배당으로 본다면 여기 한 가운데 십자가 앞에 계시던 하나님께서 출입문 쪽으로 옮기신 것입니다. 아직 성전을 완전히 떠나지는 않으셨지만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얼마 후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움직입니다. 성전 문지방에 머물러 계시던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께서 성전으로 들어가는 바깥문으로 자리를 옮기십니다. 그곳은 이미 성전이 아닙니다. 마을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 마을로 자리를 옮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 자리마저 떠나십니다. 마을을 떠나서 동쪽 산으로 옮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던 곳에서 떠나실 때마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속이 느껴집니다. 떠나기 싫어하시는 마음입니다. 누구든지 나서서 붙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기어코는 떠나실 때 아주 쓸쓸한 마음, 쓸쓸한 모습을 느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내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떠나시기 싫은 발걸음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떠나고 마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떠나시면 무서운 문제가 그 뒤를 따릅니다. 하나님이 떠나시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옵니다. 불행한 일들이 그 뒤를 따른다는 무서운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처음 성전 문지방으로 옮기신 뒤에 하나님께서 심판의 천사들을 불러서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처형하지 않을 사람들을 선택하라. 그리고 그 사람들을 찾아서 이마에 표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마에 그 표시가 없는 사람은 다 처형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분부를 받아서 떠났던 심판의 사자들이 돌아와서 복명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일들을 다 끝냈습니다.’
하나님의 지시가 또 다시 이어집니다. ‘뜨거운 불을 준비하라. 너희들은 그 뜨거운 불을 준비하고 있다가 내가 지시하면 그 불을 쏟아 부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떠나시면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 어둠입니다. 밝은 빛이신 하나님께서 떠나고 나면 어둠이 오는데 어둠은 혼자 오지 않습니다. 모든 불행을 몰고 옵니다. 줄줄이 몰고 옵니다. 싸움과 전쟁을 몰고 오고 슬픔과 고통을 몰고 옵니다. 비참함과 폐허, 멸망 등 온갖 악한 것을 함께 몰고 옵니다.
오래된 영화 기적을 다시 기억합니다.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전쟁합니다. 프랑스 군인 마이클이 전투 중 부상을 당합니다. 인근 수녀원에서 치료를 받습니다. 수녀원의 수녀 테레사와 사랑에 빠집니다. 얼마 뒤 마이클은 완쾌되고 다시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치료를 받았던 수녀원을 떠납니다. 테레사는 떠난 마이클이 너무 그립습니다.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수녀원을 떠나 나옵니다.
테레사가 수녀원을 떠난 후에 희한한 일이 발생합니다. 수녀원에 있던 마리아상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이때부터 수녀원이 있던 마을에 극심한 가뭄이 닥칩니다. 마을은 황폐한 폐허가 됩니다. 마이클을 찾아 수녀원을 떠난 테레사는 집시 마을에서 자기가 마이클에게 준 시계를 발견합니다. 그리고서는 마이클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비통에 빠집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던 테레사는 스페인의 귀족 청년을 사랑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투우경기를 하던 중에 죽고 맙니다.
사울은 왕이 된지 2년 만에 마치 하나님께서 떠나가시게 할 일만 골라서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사람들 가운데도 밉다 밉다 하면 미운 짓을 골라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업을 할 때에도 사업이 안 될 일들만 골라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도 그렇습니다. 말을 실수할 수 있고 잘못 말할 수 있지만, 하는 말마다 밉상 받는 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 속상하도록 만드는 말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편들 가운데서도 어쩌다 그런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는 말마다 콕콕 집어서 아내를 병들게 하는 남편,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사울이 그러했습니다. 하는 일들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떠나시도록 만드는 것만 같은 일만 골라서 합니다. 먼저는, 제사장만 할 수 있는 제사를 사울 자기가 집전하는 큰 죄를 범합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사울을 찾아가서 강하게 책망합니다. ‘왕께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했습니다. 왕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당신 대신 왕 될 사람을 이미 정하셨다는 선포를 하였습니다.
‘왕이 명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헤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삼상13:13-14)
하나님께서 사울을 완전하게 버리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혹시라도 여러분들이 이런 경우를 당했을 때 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 이전에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심판의 하나님, 징벌의 하나님 그 위에 강하게 둘러싸고 있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전에, 떠나시기 전에, 버리시기 전에 반드시 기회를 주십니다.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기회, 버림받지 않을 수 있는 기회, 심판 당하지 않을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도 만회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아말렉을 쳐라, 그러면 당연하게 전쟁에서 이길 텐데 이기고 난 후 아말렉을 반드시 진멸하라, 다 없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가서 아멜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3절)
하나님께서 이 명령을 하신 목적은 아말렉 진멸이 아닙니다. 물론 진멸이라는 것도 하나의 목적이 될 수 있지만 주목적은 사울이 순종하는지 하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정도까지 하셨으면 사울이 정신을 바짝 차렸어야했습니다. 이제는 전적으로 순종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 엄중한 명령을 또 거역하고 맙니다.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9절) 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만큼 했으면 이번에는 확실하게 순종할 것이라고 생각하시고 하나님은 기대를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사울을 보셨습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사울을 보고 계시던 하나님은 절망에 빠지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스리되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라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10절)
하나님의 절망은 곧바로 하나님의 분노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사울 위에 떨어집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23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을 그렇게 싫어하시는데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은 그와 똑같은 가장 무서운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에게 질문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인생이란 살다보면 이런 일을 있을 수 있습니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여러분이라면 그 다음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웬만한 신앙인이라면 금방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라도 즉각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면 받아주실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정답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성경 모든 곳에서 수없이 그런 말을 하셨습니다. 호세아 6장에서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이이라’(호6:1)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군데에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울도 그 답을 알았습니다. 사울도 하나님께 돌아갔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24절) 라는 말씀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도 하나님께 돌아갔습니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25절) 라고 사무엘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31절) 라는 말씀에서도 사울이 돌아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하고 이제는 돌아가겠다고 말하는데 무언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사울이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24절) 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이 두려워해야할 대상이 사람입니까?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이 따를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사람 생각입니까?
이 답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습니다. 두려워할 것은 하나님인데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잃어버릴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버릴까? 그것만 생각합니다.
사울도 자기가 백성을 두려워해서 백성들의 말을 따랐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은 기름을 부으십니다. 즉 왕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이미 두려움의 대상도 말씀에 따를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말은 잘했지만 실제로는 그러했습니다. 즉 사울이 이미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사울에게 있어서 자기가 왕이 된 것은 자기 능력이나 자기 재주 혹은 우연히 왕이 되었지 하나님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돈 번 것이 내 능력 때문이고 내가 사업을 잘해서 돈 번 것이지 하나님께서 돈 벌고 내 사업을 잘하게 해주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존재는 사울에게 없습니다.
사울은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30절) 라는 부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높여야하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높여야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을 높여야할 하나님 종이 높여야할 하나님은 생각하지 않고 낮아져야할 자기는 높아지겠다고 하나님의 종에게 나를 높여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갈 데까지 다 간 것입니다. 절대로 여기까지 가면 안 됩니다. 사울이 입으로 내가 죄를 지었다고 말하지만 아무 의미 없는 말이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회개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끝까지 자기만 생각한 것입니다.
사울은 거기다 거짓말을 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법을 어겼다고 하자 사울이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니다’(13절) 라고 말했습니다.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이 그렇습니다. 왕의 자리에 오르고 왕 같은 자리에 오르고 높은 자리에 오르면 뻔히 들통 날, 한 번만 들여다보면 뻔히 드러날 거짓말들을 합니다. 자기는 그것이 거짓말 하고 있는 줄도 모릅니다. 갈 데까지 가면 그렇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사울에게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14절)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15절) 라고 변명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움직이는 것이 하나도 없게 다 없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은 또 ‘나는 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20-21절) 라고 사무엘에게 아주 구차한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저것이 무슨 말인지 뻔히 알아들을 변명한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 명심하십시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서는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속으로는 속일 수 있다고 ‘고의적으로 착각’합니다. 프로이드는 이런 것을 ‘무의식적인 의도를 가진 병리현상’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고의적으로 착각’했습니다.
여호수아 시대 때 아간이 ‘이 착각’을 했습니다. 전리품을 절대로 챙기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엄하게 명령하였습니다. 아간이 이를 어기는데 절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혼자 어느 집에 들어가서 슬쩍 챙겼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동료들도 없고 부하도 상관도 없었습니다. 챙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여지없이 색출당합니다. 그리고 즉각 처형당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에서 하나님은 조롱당하는 분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난 후, ‘하나님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다윗도 당할 뻔했습니다. 다윗이 못된 죄를 저질렀습니다. 부하 아내 밧세바를 임신시킵니다. 밧세바의 남편 즉 우리아의 아이로 속이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습니다. 실패했습니다. 실패하자 다윗은 더 못된 죄를 짓습니다.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죽여 버렸습니다. 다윗은 자기와 총사령관 요압 둘만 알고 다른 사람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그것으로 끝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윗의 착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셨습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추상같은 호령이 떨어졌습니다. ‘다윗 너는 죽을 놈이다.’ 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서 잘 보십시오. 그렇게 큰 죄를 지은 다윗이 목숨을 건집니다. 거기다가 놀랍게도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다윗을 편애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간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다윗은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다윗은 하나님 앞에 정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호령을 내리셨을 때 하나님 앞에 퍽 엎드렸습니다. ‘하나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죽어야합니다. 바로 접니다. 제가 잘못 했습니다.’
이제 하나 더 생각해봅니다. 가장 실제적인 일입니다. ‘만약 오늘 본문의 사울이 그 거짓말을 하지 않고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고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정직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것입니다.
저는 거의 확신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에 처음으로 왕을 세우셨는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기름 부으시고 왕의 입지를 세우셨고 만드신 사울, 그 사울을 하나님께서 절대 버리고 싶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아마 다윗보다 더 크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고 다윗보가 더 큰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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