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하나님의 영이 떠나시면 (사무엘상 16:14-23)

분당소망교회 2020. 10. 16. 10:08

 

하나님의 영이 떠나시면

 

 

 

사무엘상 16:14~23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시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시면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소월의 시 먼 후일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너무 아름다운 시라서 꼭 한 마디 붙이고 싶지만, 감히 무례라 싶어서 말을 붙이지 못하겠습니다. 그저 다시 뇌이고 또 뇌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의 마지막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오늘도 내일도 또 그 다음 내일도 그리고 또 내일도 내가 어떻게 당신을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나귀나 찾으러 다니던 청년 사울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선택하시고 기름 부으셨습니다. 정말 자기가 왕이 될지 의구심에 사로잡혀있던 사울을, 하나님께서 만 이천 분의 일의 확률을 가볍게 뛰어넘어 제비뽑아 왕으로 뽑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직 연약하던 왕의 입지를 하나님께서 희한한 방법으로 탄탄하게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은혜를 받은 사울은 그러나 하나님의 왕 된지 이년 만에 자기에게 그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은 후 사울처럼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이 선물도 주시고 이 복, 저 복 다 주고 싶으십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기 전이든 받은 후이든 하나님을 떠나면 자기가 망하고 그 가정이 망하고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함께 망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주고 싶어도 주실 수가 없으십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고민이 있고 하나님의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고 딜레마가 있습니다.

 

사울은 먼저 하나님의 엄중한 법을 거역했습니다. 제사장의 자리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너 대신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우시겠다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선언을 하신 하나님께서 희한하게 사울에게 또 기회를 주셨습니다. 버리셨으면 아예 돌아보지도 않으실 것 같은데 돌아보셨고 기회를 또 주셨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든 간에 한 번 더 세우려고, 한 번 더 사람만들고 주셨던 복을 계속해서 가질 수가 있도록 하시고 싶은 것이 하나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과 전쟁하라 그러면 당연하게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단 하나 아말렉의 모든 것을 완전하게 없애는 것이다.’ 라고 단단하게 말씀하시고, 이 약속만큼은 확실하게 지킬 것으로 믿고 잔뜩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기대는 무참하게 무너지고 맙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엄명을 보란 듯이 정면으로 거역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새겨도 부족할 텐데,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새기려고 기념비를 세웁니다. 하나님의 종이 찾아가서 책망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할 때 얼른 엎드려서 잘못했다고 하는 것만 제대로 배워도 되는데, 사울은 온갖 구질구질한 변명을 다 늘어놓았습니다. 거기다 백성들 앞에서 자기 체면을 세워달라고 하나님의 종을 붙드는데 강제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 종의 옷이 찢어질 정도로 붙들고, 어떻게든 자기 체면, 자기 위신을 세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인 사무엘도 하나님도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삼상15:35)

 

오늘 본문은 그 다음의 일입니다. 사울에게 크게 실망하신 하나님께서 사울을 떠나십니다.

이 자리에서 꼭 확인하시고 잘 보시고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떠나시면 떠나시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에 따르는 것이 있습니다. 빛이신 하나님께서 떠나시면 그 자리에 어둠이 다가오게 됩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영이 떠나게 되면 악령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라는 14절 말씀은 그것을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떠나시면 악령이 들어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악령이 들어왔다는 말을 좀 자세하게 설명하면, 본래 사람의 마음에는 악한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519절에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본래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인정하든 하지 아니하든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에,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시면 그 속에 있던 악한 것들이 활동을 못하게 됩니다. 다 주눅 들고 바짝 얼어서 굳어버립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의 영, 성령님이 맺으시는 꽃과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오시게 되면 예쁜 나무가 자랍니다. 그 다음에 큰 나무가 됩니다. 아주 아름다운 꽃이 생깁니다. 그리고 열매가 생깁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은 대표적으로 아홉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오시면, 성령님께서 사람들 마음속에 오시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사랑, 희락, 화평이 있고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이 있고 충성, 온유가 있고 절제가 생긴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 가지 좋은 나무들, , 열매가 생기게 됩니다. 한 마디로 사람이 멋있게 됩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참 아름답고 고상한 사람이 됩니다.

잘 아십시오. 내가 멋있는 사람, 고상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고 따로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 믿고 속에 성령님이 충만하게 되면 여성은 아름답게 되고 남성은 멋진 사람이 됩니다. 아내에게 존경받는 사람, 아내는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된 때에도 남편에게 또 여러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주시는 큰 복인데, 미안하지만 이 복을 누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속에 가득하게 계시는 이것만 하면 되는데, ‘내가’ ‘덧칠만 하다 보니 속에 진짜 들어갈 것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하게 아십시오. 하나님의 영만 충만하면 우리 인생이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사람만 멋있게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이 더해집니다.

그러나 하나 여러분들이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한 번 오셨다고 하나님의 영이 한 번 충만했다고 마냥 계속 계시는 것이 아니고 마냥 계속 충만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잘 아셔야합니다. 물론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계속 함께 하실 만한 사람이 되기만 하면 언제까지나 하나님께서 계시고 성령님이 충만하시지만, 더 이상 함께 하실만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떠나십니다. 성령님이 떠나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게 되면 그동안 하나님 때문에 숨죽이고 있던 악한 것들이 쾌재를 부르면서 활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름답고 고상하던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나시면 형편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시기가 정말 쉽지 않고 하나님의 고민이 거기에 있습니다.

 

사울에게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14절에서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번뇌하게 했다는 말씀의 의미는 공포에 사로잡혀서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지옥과 같은 고통을 주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떠나시면 돌아오는 것은 이것입니다. 지옥과 같은 고통입니다. 사울은 여전히 왕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령이 주는 고통을 당하는 사울에게는 왕의 자리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도 소용이 없고 아무리 높은 자리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악령이 괴롭히는 것을 감당할 사람이 없습니다. 인간은 악령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먼저 부탁드리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떠나시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가정을 떠나시지 않도록, 여러분의 사업장을 떠나시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개인도 그렇고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떠나시려는 기미가 있기만 하면 바짝 정신 차리세요. 그리고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하나님, 떠나지 마십시오, 절대로 떠나시면 안 됩니다. 이제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제가 팁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이렇게 맹세하고 난 뒤 그대로 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하나님을 붙들면서 맹세를 하십시오. 하나님은 혹시 속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분이 그렇게 하나님을 붙드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속아도 좋다, 그냥 그렇게 맹세라도 한 번 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붙드십시오. 그저 붙드십시오. ‘하나님, 저에게서 떠나지 마시고 우리 가정에서 떠나지 마시고 우리 사업장에서 떠나지 마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붙드세요.

만약 하나님께서 이미 떠나셨으면 돌아오시도록 하십시오. 때로는 잠을 안 자는 것도 괜찮습니다. 밥 잠깐 안 먹는 것도 괜찮습니다. 평소에는 그럴 필요 없지만 절박한 일이 있을 때, 잠을 안 자고 밥을 안 먹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진짜일까? 하시며 속아주시기도 하고, 더욱이 진실된 마음으로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정말 기뻐하십니다,

 

에스겔이 보았던 환상을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실망하신 하나님은 성전 한 가운데서부터 떠나기 시작하십니다. 문지방을 떠나십니다. 출입문까지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떠나실 때 매몰차게 떠나시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누가 나를 붙들지 않나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그 뒤돌아보시는 모습, 멈칫멈칫 하시는 모습은 성전 한 가운데서 떠나실 때에도, 문지방에서 떠나실 때에도 현관에서 떠나실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누구라도 붙잡아주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제는 다시는 안 보려고 떠나려고 했는데 저 사람이 붙들어서 할 수 없이 있다.’ 이런 말씀을 하시고 싶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버지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딸이고 아들입니다. 속아도 좋아하십니다. 잠시라도 제대로 돌아오기만 하면 그것만으로도 그냥 좋으십니다.

그러나 끝내 하나님께서는 마을을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완전히 떠나신 것 같지만 완전히 떠나신 것이 아니라 저 동쪽 산 위에까지만 떠나셨습니다. 에스겔 1123절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가운데에서부터 올라가 성읍 동쪽 산에 머무르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돌아오실 수 있는 곳까지만 떠나셨습니다. 너무 멀리 가면 못 돌아올 것 같으셨기 때문입니다. 제때 못 올까 싶어서 돌아올 수 있는 곳까지만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돌아가시려고 만반의 채비를 차리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결국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영은 떠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마음으로 떠나셨습니다. 그 떠난 자리를 악령이 차지했습니다. 악령은 사울에게 와서 죽음과 같은 고통을 쏟아 붓습니다. 왕의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어떻게든지 해결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신하들이 묘책을 발견했습니다.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15-16)

그리하여 다윗이 선택됩니다. 아직 소년이었던 다윗이 음악치료사로 등장한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다윗의 음악치료는 효험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음악치료에 그처럼 고통당하던 사울의 고통은 사라졌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아실 것이 있습니다. 정신질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본래의 정신적 질환이고 또 하나는 영적 질환 즉 귀신들림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것을 잘 구별하지 못해서 헛수고와 고생을 많이 하는데, 영적이 질환인 귀신들림은 음악 치료의 영역밖에 있습니다. 음악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영적 질환은 영적 능력 이외에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사울은 후자였습니다. 사울의 병은 영적질환, 귀신들림이었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그 말씀을 하십니다. 14절에서는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라고 말씀하시고, 1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1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2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는 말씀이 두 번이나 있습니다. 사울의 병은 영적인 질환, 귀신들림, 악령이 괴롭힘이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이 음악치료를 하자 나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병이 나았을까요? 정확하게 보셔야합니다. 다윗의 수금 음악으로 말미암아 치료된 것이 아니라, 다윗 속에 충만했던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있던 악령을 쫓아냈습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라는 13절을 보십시오. 사울을 떠나신 하나님의 영이 다윗에게 충만하게 들어왔습니다. 악령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던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다윗이 가기만 한 것으로 악령이 도망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영의 능력이 그렇습니다. 어떤 힘으로도 되지 않던 것이 하나님의 영이 가까이 가기만 하면 무서워서 도망가고 그걸로 끝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치료는 일시적인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서 떠나면 다시 악령이 또 사울에게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완전한 치료는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의 영이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계셔야 온전하게 치료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 영화 기적을 다시 생각합니다. 수녀 데레사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수녀원을 떠납니다. 데레사가 수녀원을 떠남과 동시에 수녀원에 있던 마리아상이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수녀원에 있던 마을에도 수녀 데레사에게도 불행이 시작됩니다. 수녀 데레사는 불행의 고통을 견디지 못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 자기 때문에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기고 많은 사람이 슬픔을 당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서원을 합니다. ‘하나님, 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렇게 결심하는 순간 그와 함께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납니다. 죽은 줄 알았던 데레사의 사랑하는 사람이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집니다. 오랜 세월 비가 오지 않아 폐허가 되었던 수녀원의 마을에 단비가 내립니다.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있던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다시 살아납니다. 또 하나, 사라졌던 수녀원의 마리아상이 어느 틈에 제 자리에 돌아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