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버러지 같은 나? (이사야 41:8-16)

분당소망교회 2020. 11. 5. 13:37

버러지 같은 나?

 

 

 

이사야 41:8~16

 

 

 

얼마 전 미국 일간지 뉴욕 타임즈가, 프랑스 출신 화가 폴 고갱의 그림 한 점이 미술품 거래 사상 최고 금액인 약 3억 달러에 팔렸다고 보도했습니다. 3억 달러라고 하면 적게는 33백억 원이고 좀 넉넉하게 말하면 35,6백 억 원입니다. 그림 한 점의 가격이 그러하다는 것인데, 고갱은 여러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런 고갱이었습니다.

그런데 믿기지 않는 사실은 그 대단한 고갱이 인생 특히 인생 말년을 가난에 찌들다가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입니다. 고갱은 화가로서는 늦은 30대 중반에 입문했고, 입문 때부터 일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미술계 반응은 냉담했고 미술관에서는 고갱의 그림을 전시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고갱의 그림을 찾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섯 자녀를 둔 가장인 고갱의 형편은 날로 궁핍해졌습니다. 그럴수록 고갱은 더욱 그림에 몰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갱에게 돌아오는 것은 냉소와 조롱뿐이었습니다. 완전히 실패한 인생이었고 실패한 화가였습니다. 좌절과 절망에 빠져서 자살을 시도했는데, 한 번만 시도한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시도했습니다. 끝내 고갱은 비참한 가운데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고갱의 말년 인생이 얼마나 비참했으면 고갱의 죽음이 영양실조 때문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고갱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고갱의 가치를 몰랐습니다. 다른 사람은 물론이지만 고갱 자신도 자기 가치를 몰랐습니다.

 

고갱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의 가치 또 자기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대단한 가치가 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일이 좀 덜 풀린다, 형편이 덜 좋다, 이런 것 때문에 ! 나는 이런 인생이구나, 내 가치는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아내들 중 자기 남편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정말로 금 같은, 보석 같은 대단한 남편을 만났는데, 그 남편의 가치를 모르는 아내들도 많고, 반대로 자기 아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아내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그 좋은 보배를 가지고 혹은 그렇게 귀한 존재인데 시원찮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내 아내 내 남편을 별 것 아닌 사람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 그것은 정말로 바보 같은 노릇입니다.

 

고대 바벨론의 전성기가 끝나갈 무렵에 이스라엘 동쪽 페르시아가 근동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합니다. 페르시아의 부상에 위기를 느낀 당시 강대국 이집트, 바벨론 등 여러 나라들은 페르시아를 대적하기 위해서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동맹만 가지고 불안했던 각 나라들은 우상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 우상을 더 거대하게 만들고 더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페르시아에게 허무하게 패망합니다. 이로써 페르시아는 당시 근동지역에서 초강대국, 유일의 강대국이 됩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렇게 강력한 이집트, 바벨론이 당했다면 이스라엘 정도야 페르시아에게 한 주먹 거리도 되지 않는 연약한 나라였습니다. 이미 이스라엘은 숱한 나라들의 침략을 받아서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나라의 모든 것, 국민들도 엉망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늘 이집트를 상전으로 모셨습니다. 또 앗수르라는 나라가 나타나서 침공을 수차례 했습니다. 앗수르에게 나라가 망할 뻔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앗수르의 공격을 겨우 견뎌냈더니 또 바벨론이 일어나서 침공했습니다. 바벨론 침공에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끝내 망하고 말았습니다. 나라의 쓸 만한 사람들은 모두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어느 시대나 그러하듯이 똑똑하고 괜찮은 사람들은 끌려가고 별 쓸모없는 사람들만 남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라에 남아서 무엇을 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국민들을 괴롭힙니다. 정치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그런 사람들이 남아서 나라를 엉망으로 만듭니다. 국민들은 도탄에 빠집니다. 안팎으로 괴롭힘을 당합니다. 그런 나라들이 지금도 여러 나라 있습니다.

 

이러던 차에 이번에는 이집트보다 바벨론보다 더 막강한 페르시아가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번에는 페르시아에 의해서 또 다시 짓밟히게 되었습니다. 극도의 절망에 빠집니다. 지금도 죽을 지경인데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가?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이 포함되어 있는 이사야 41장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41장의 주 내용은 이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스라엘아, 페르시아 참 대단하지? 그 대단하고 막강한 바벨론을 한주먹으로 뭉갰다니 정말로 대단한 나라이지.’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그런데 나 한 번 물어보자. 그 페르시아를 누가 일으켜 세웠는가? 누가 페르시아를 그렇게 대단하게 했는가? 저절로 그렇게 되었느냐? 그 나라가 본래 그렇게 대단한 나라였느냐? 아니지 않느냐? 조막만한 나라가 커지고 커져서 저렇게 대단한 나라가 되고 이집트도 바벨론도 다 무너뜨린 나라가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러했던 페르시아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대단한 나라가 되었느냐? 저절로 그렇게 되었느냐? 누가 그렇게 했느냐? 바로 나 하나님이 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유가 있어서, 까닭이 있어서 페르시아를 강하게 하고 그 페르시아를 통해서 이집트, 바베론을 다 무너뜨린 것이 바로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또 이스라엘에게 얘들아, 나 그런 하나님이 누구냐? 바로 너희들의 아버지가 아니냐? 너희들의 하나님이 아니냐? 이스라엘을 나의 신부로 삼은 것이 바로 나 아니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내가 자식으로 삼은 이스라엘, 나의 신부로 삼은 너희를 언제까지나 그렇게 당하고 마냥 내버려 두겠는가?’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8-10)

 

이제 우리는 죽었다, 죽는 것보다 더 힘들게 되었고, 우리는 아무것도 없다. 생의 의미가 없다.’ 라고 말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잠시는 까닭이 있어서 내가 어쩔 수 없이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두려두었지만, 마냥 계속해서 그렇게 당하도록 내버려 두기만 하겠는가?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맹세하거니와 결단코 그런 일은 절대 없다, 너희 이스라엘이 내게서 버림당하고 한없이 고통당하고 끝까지 절망과 좌절 속에서 살아가는 일은 절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너희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겁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경제가 어렵고 너희들을 괴롭히는 나라 그리고 사람이 있고, 몸이 중병 들었다고 하더라도, 가정에 이런 저런 문제가 있다고 할지라도 걱정하지 말라, 내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들을 지켜주겠다, 붙들어주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지금까지 너희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을 단단히 손을 보겠다, 다 거꾸러뜨리고 말겠다, 누가 내 자식을 건드리느냐? 누가 내 자식의 가정을 힘들게 했느냐? 다시는 너희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이 말씀이 이사야 41장의 말씀입니다.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라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11-14)

 

영화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보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제가 참 좋아합니다. 여러 번 보았고 지금도 틈틈이 보고 있습니다. 그 영화에서 죄수들을 악랄하게 괴롭히는 악한 간수장이 한 사람 있습니다. 죄수를 심하게 때려서 장애인으로 만들기도 했고, 교묘한 방법으로 여러 명의 수감자들을 살해하기도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무렵에 이 간수장이 그동안 한 모든 악한 일들이 다 밝혀집니다. 경찰에 체포되어서 끌려갑니다. 간수장이 끌려가는 광경을 죄수들이 모여서 통쾌하다는 듯이 웃으면서 그 광경을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못되고 그렇게 무섭던 간수장이 말이야 징징 울면서 경찰에 끌려갔어.. 끌려가기 싫어서 버티는 모습은 가관이었다. 너희들도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죄수들을 그렇게 괴롭히던 그 간수장은 다시는 죄수들을 괴롭히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고, 그 정도만이 아니라 이제는 자기가 감옥에 들어가서 자기가 괴롭히던 그대로 당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갑자기 생각나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제 자랑같이 되어서 좀 망설였지만 한 번 들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대학 4학년 때 회사에 들어갔는데 다른 공부를 하느라 입사가 좀 늦었습니다. 들어가니 저보다 1년 반을 먼저 입사한 대학 동기생이 있었습니다. 나이도 같습니다. 제가 나온 대학은 선후배간이 아주 분명합니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후배는 후배이고, 아무리 적어도 선배는 선배입니다. 동기는 몇 살 차이가 나도 다 동기이고 그냥 친구입니다.

그 사람은 저와 나이도 같고 학번도 같아서 당연하게 같은 학교 출신으로 편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어느 날 저를 화장실로 불러서 아무리 동기이고 같은 학번 동기라도 자기에게 선배로서의 예의를 갖추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학교를 나와서 그런 이야기 들은 것이 지금까지도 그때 한 번 뿐이었습니다. 저는 알았다고 하고 그렇게 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서 인사 발령 때 제가 갑자기 과장이 되었고 그 친구는 진급이 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제가 맡은 과와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부서에 있던 그 친구가 저의 과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그 친구에게 ‘000라고 불렀고 그 친구는 저에게 과장님!’ 하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것이 이사야 41장의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15-16)

여러분이 말하는 것처럼, 여러분을 절대로 버려진 민족, 버려진 가정, 이제는 아무 희망이 없는 인생으로 그냥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4절에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라고 말씀하시는데 다른 번역 성경에는 지렁이 같은 야곱아라고 말씀합니다. 버러지 지렁이이라는 표현을 하나님께서 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고 너 버리지 같은 이스라엘아라고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자신들이 했습니다. 우리는 버러지 같은 민족이고 지렁이 같은 인생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당해도 너무 오래 당했습니다. 아주 옛날에 이집트에 노예로 살 때는 죽도록 노동만 했습니다. 때로는 벽돌을 만들 때에 짚도 주지 않고 벽돌을 만들라고 하기도 했고, 이스라엘 민족 인구가 너무 많다고 남자 아이들을 낳으면 죽이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래도 히브리 사람들은 아야소리 한 마디도 못했습니다. 이집트에 당하고 앗수르에 당하고 그러다 결국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안 챙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은 항상 엄마는 오빠만 좋아하고, 아빠는 두 동생만 좋아한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스라엘이 그러했습니다. 자기네들을 마치 버리지 같이 여기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경제 문제, 어려운 문제가 너무 오래 가면 이런 마음이 듭니다. 병도 걸릴 수 있지만 너무 오래 가면 그럴 수 있고, 자녀 문제, 가정문제가 너무 오래 가면 그럴 수가 있는데, 만약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특별히 잘 들으시고 잘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애를 써도 병이 낫지 않고 사업도 안 되고 취업도 안 되고 절망적인 상황이 오래 가면 말로야 아니라고 하지만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구나,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시는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끝난 인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했습니다. 이사야는 예수님보다 500년 전에 예언했습니다. 미래에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누가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 멸시를 받아서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사람, 간고를 많이 겪은 사람, 질고를 당한 사람, 사람들이 아예 쳐다보기도 싫어하는 사람, 멸시를 당하고 소위 선량하다고 하고 긍휼이 있다고 하는 우리도 귀히 여기지 못할만한 사람..’

예수님은 그것으로 끝일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어서 그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런 분인 줄 몰랐다, 저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 몰랐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예수님을 그런 존재로 세우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왕,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는..버려진 사람, 버러지 같은 사람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들을 떠났다고 생각하느냐, 절대로 떠나지 않았다. 너희들이 나를 떠났기 때문에 내가 너희들을 떠난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너희들을 떠난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나를 떠난 것이다. 내가 너희들을 잊어버렸다고 여러분들은 생각하겠지만 어찌 내가 너희들을 잊어버렸을 리가 있느냐? 여러분들이 나를 잊어버려서 여러분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한 번도, 잠시도 너희들을 떠난 적이 없다. 너희들이 왜 버러지냐? 여러분들이 왜 지렁이냐?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잘났든 못났든 내 자식은 다 나한테 금 같고 옥 같이 귀여운 자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나를 잊었고 나를 떠났고 할지라도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특히 힘들고 절망과 좌절이 오래 있는 분들,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의 자녀 여러분들을 잊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혹 잘못 한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사람으로 보면 다시는 쳐다보기 싫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씀하시는 것이 성경인데, 그 눈을 가지고 여러분이 성경을 보시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그런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으로 두 곳만 보겠습니다. 하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라는 스바냐 317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잘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잘나서도 아니고 예뻐서도 아닙니다. 그냥 여러분들이 하나님 자녀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보기만 해도 기쁘시고 즐거우시고 노래를 부르십니다. 이런 존재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안타까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존재인지 아느냐?’

 

한 군데 더 보겠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라는 아가서 210절 말씀입니다.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십니까?

또 이어서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2:11-14)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잘 한 것이 없고 예쁜 구석이 없고 하나님 볼 면목이 없어서 바위 틈 낭떠러지에 숨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2:1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리가 좋아서 또 얼굴이 아름다워서 그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자식이기만 하면 그 소리가 좋고 얼굴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41장의 말씀 그리고 스바냐 317절의 말씀, 아가서 2장에 있는 이 말씀 중에 라고 말씀하시는데 가 누구입니까?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에 대해서 이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절망하시겠습니까? 그래도 낙심하시겠습니까? 경제 문제로, 병 문제로, 자식 문제로 낙심하시겠습니까?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쳐다보면서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의 자녀를 사랑하시고 한없이 돌보시기를 기뻐하시면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를 기다리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