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여호수아 23:1~11
박정희 정권 때 독재에 항거하여 야당의원들이 자주 시위도 하고 농성도 하고 단식도 했었습니다. 그 당시 정치권 안팎에서 어른 대접을 받던 원로 정치인 한 분이 단식을 하다가 탈진해서 쓰러졌습니다. 병원에 후송된 그 원로 정치인은 병상에서도 자기는 살만큼 살았으니 죽음으로라도 민주화를 이루고야말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 원로 정치인에게 후배 정치인 한 분이 문안을 갔습니다. 선배의 그 뜻에 감격한 나머지 그 후배 정치인이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선생님 같은 분이 이렇게 항거하다가 돌아가시면 이 정권은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후배 정치인의 그 말을 들은 원로 정치인이 후배를 빤히 쳐다보면서 이 말을 하더랍니다. ‘늙은이 하나 죽는다고 세상이 바뀌겠나, 자네 같은 젊은 사람이 희생한다면 몰라도……’
그 뒤의 이야기입니다. 그 원로 정치인이 기력을 회복해서 그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국회의원 후보 합동 유세장에서 상대방 젊은 후보가 이 원로 정치인을 두고 외쳤습니다. ‘여러분, 저 분은 그 동안 민주화를 위해서 고생도 많이 하셨고 연세도 드실 만큼 드셨으니 이제는 여생을 편히 보내도록 세대교체를 해드리십시다.’
그 뒤를 이어서 단상에 오른 그 원로 정치인이 제법 높은 연단에서 아래로 훌쩍 뛰어 내렸습니다. 충격이 있었든지 간신히 몸을 가누면서 다시 연단에 올라서서 청중을 향해서 이렇게 소리 질렀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래도 제가 늙었습니까?’
식품이나 약품의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말씀을 드리면서 조금 부끄러운 것은 오랫동안 저는 유통기한을 잘 안 지켰습니다. 아까워서 그랬습니다. 아직 쓸 만한 것 같아 잘 안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근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유통기한이 넘은 약은 약이 아니라 독이라는 말을 계속 교만하게 듣고 넘길 수는 없지 않는가? 이제는 나도 겸손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유통기한이 넘은 보조식품들을 폐기처분 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아까운 몇 가지는 아직은 남아있습니다.
유통기한은 약품이나 식품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도 아직 오래 쓸 만한 사람, 쓸 기간이 얼마 안 남는 사람 등 유통기한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기도 합니다. 요즘 제가 자주 고민하는 것은 분당소망교회에서 저의 유통기한이 이미 한참 지난 것은 아닌가? 그것도 모르고 빨리 비킬 생각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오래 전에 제가 집중적으로든 성경공부를 시작할 때 들었던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경 인물들의 생존기간입니다. 당시 생각에는 오래 산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오래 살았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적게 산 사람들은 그와 반대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더 보면서 꼭 그와 같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중 최고 어른인 아브라함은 백 일흔 다섯 살, 그 아들 이삭은 백 여든 살, 좀 아쉬움이 많은 야곱은 백 마흔 일곱 살 살았는데, 성경에서 절대로 그 무게가 더하지 않는, 성경에서 가장 형통한 인물 중 하나인 요셉은 그 분들보다 한참 적은 백열 살까지만 살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가장 형통한 인물 또 한 사람인 여호수아도 다른 사람들보다 짧은 백열 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특히나 신약의 그 귀한 하나님의 종 스데반은 참으로 아깝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서 뭇사람들의 칭찬을 받던 천사와 같은 스데반은 그 젊은 나이에 돌에 맞아서 그야말로 비명횡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와 정반대의 사람들도 찾을 수가 있는데, 여러분들도 성경을 함께 보면 좋겠습니다. 사사기 12장입니다. ‘입다 사사 다음의 베들레헴의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그가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을 두었던 그가 딸들을 밖으로 시집보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밖에서는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왔더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칠년이라 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 그 뒤를 이어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스불론 사람 엘론이 죽으며 스불론 땅 아알론에 장사되었더라 그 뒤를 이어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잇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그에게 아들 사십 명과 손자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칠십 마리를 탔더라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기 된 지 팔년 이라 비라돈 사람 헬렐의 아들 압돈이 죽으매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더라’(삿12:8-15) 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두 분의 사사, 8절에 나오는 입산, 그리고 13절에 나오는 압돈, 이 두 분의 사사는 육십 명의 아들, 사십 명의 자녀를 낳고 결혼을 다 시킬 정도로 상당하게 오래 살았습니다. 일 년에 한 명씩 보낸다고 해도 육십년, 또 사십년입니다. 이처럼 오래 살았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성경 기록에 의하면, 그렇게 오래 산 당시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요 하나님의 종으로 있으면서 그 분들이 한 것이라고는 뭐하나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아들 장가보내고 딸 시집보내고 또 낳고 또 그렇게 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거의 모든 사람이 태어나서 공부하고 결혼하고 자식 낳아서 시집 장가보내고 인생 마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고 오래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라는 생존 기간은 결단코 아닙니다. 길든지 짧든지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는가? 하는 삶의 무게입니다. 만약에 삶의 무게가 없다면 오래 산 것도, 오래 일을 한 것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아도 삶의 무게가 없다면 그 일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반대로 짧게 살고 짧게 일했어도 삶의 무게만 있다면 존귀한 한 인생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이것을 판단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십니다. 가장 정확하게 판단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판단하시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판단하신 결과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형통하게 해주셨는가?’입니다. 또 다른 것이 있기는 하지만 대표적으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에게는 형통하게 해주십니다. 이것은 본인이 제일 잘 압니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하나님의 은총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본인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형통한 것은 흔히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물질 혹은 건강, 자녀가 얼마나 잘 되었고 일에 성과가 있었고 일이 잘 풀렸는지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보다 형통하다, 하나님의 은총을 많이 받았다, 나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참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압니다.
한 번 돌아보십시오. 여러분들은 여러분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았다, 받고 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형통이라는 선물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물질과는 관계없고 건강하고도 별 관계가 없습니다. 자녀들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이런 것도 관계없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항상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챙겨주시고 나의 손을 잡고 이끌어주시고, 만약에 어떤 일이 있다 싶으면 하나님께서 조금도 지체하시지 아니하시고 이끌어주시는 사람인가 스스로 생각하는지 이것이 중요합니다. 어떻습니까?
성경전체에서 이견 없이 가장 형통한 사람이라고 평가되는 두 사람을 생각해봅니다. 요셉이고 여호수아입니다. 이 두 분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셨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3장은 여호수아가 죽을 때가 다 되었습니다. 1절에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이 늙은지라’(수23:1) 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호수아가 죽을 때가 되었을 때, 유통기한이 다 된 것을 압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을 불러 ‘여러분, 나는 이제 나이가 많이 늙어서..’ 물러가야한다는 유언적인 말씀을 합니다.
유언은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는 그 삶의 집약입니다. 그 사람 인격의 집약입니다. 그 사람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가? 한평생 살면서 별것 아닌 것들은 다 없어지고, 마지막에는 그 사람 인격의 진수만 남아있습니다. 그것이 유언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유언을 통해서 여호수아가 어떤 사람인지 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23장과 24장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이란 말을 합니다. 여호수아 속에 하나님만 남아있었습니다. 한 번 보겠습니다.
3절에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라고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하십니다. 또 5절에서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라고 말씀하시고, 8절에서도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라고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9절에서도 ‘이는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라고 말씀하시고 10절에서도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라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11절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라고 말씀하시고, 13절에도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14절 ‘보라 나는 오늘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서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은 마음과 뜻으로 아는지라’ 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너희에게 임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모든 불길한 말씀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절하기까지 하실 것이라’ 라는 15절 말씀처럼 두 번 나올 때도 많습니다.
16절에도 ‘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하니라’ 라고 또 있습니다.
이처럼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의 입에 달려 있습니다. 여호수아 입에 하나님이 붙어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수아 속에 하나님이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늘 부동산을 말하는 사람은 부동산이 그 속에 가득 있고, 돈, 돈, 돈 하는 사람은 그 속에 다른 것은 없고 돈만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6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눅6:43-45) 그 속에 있는 것이 입으로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의 입에는 첫 번째로 하나님이 달려있었습니다. 입에 하나님이 붙어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여호수아가 하나님 이라는 이름 앞에 계속 붙인 말이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 중에서 한 군데를 제외하고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의 가슴 속에 하나님이 가득 들어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 하나님을 후배들에게 자꾸 나누어주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하든 기억시키고 싶었습니다. 각인시키고 싶었습니다. 이 마음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나님 때문에 안온한 삶을 살고 많은 복을 받았는데, 내 아들도 내 손주도 그 하나님을 기억해서 나처럼 이런 복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가장 형통한 사람 여호수아가 말하고 있습니다. 백성들도 나처럼 이런 복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속에 들어있을 뿐 아니라 여러분도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여호수아에게 하나님 절대주권주의가 정말로 확실했습니다. 지금 땅을 분배하는데 있는 땅을 분배해야한 것이 아닙니다. 없는 땅,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그 땅 주인이 엄연히 있으므로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마치 제 것처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이지만 하나님께서 다 정복하게 해주셔서 여러분들의 것이 되게 할 것이라는 말을 자신만만하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해서 차지하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보라 내가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 쪽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제비 뽑아 너희의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4절) 라고 말합니다.
나누어줄 수 없는 남의 땅인데도 나누어주면서, 걱정하지 말라 이 땅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틀림없이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눈으로 본 그 대단한 모든 일들도 하나님께서 다 하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참 멋있습니다. 그냥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확신하고 있습니다. 자신 있게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어떻게 해서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의 무게가 어느 정도의 무게이냐? 저 여호수아 속에는 쓸데없고 무게도 안 나가는 지푸라기 같은 것들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쥐고 계시는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내가 여호수아를 형통하게 해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의 이런 모습이 성경에서 가장 형통한 또 한 사람 요셉에게 그대로 나타납니다. 똑 같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들어갔습니다. 보디발의 부인이 요셉에게 추근거립니다. 틈만 나면 요셉을 붙듭니다. 그때마다 요셉이 피합니다. 어느 날 심하게 붙들고 늘어지자 요셉이 단호하게 말합니다, ‘마나님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제가 어떻게 하나님께 죄를 짓겠습니까?’ ‘당신 남편에게 죄를 짓겠습니까?’ 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짓겠습니까?’ 라고 말한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깜짝 놀랍니다. 도대체 하나님이란 어떤 존재이기에 저 사람이 저토록 저러하냐? 생각했을 것입니다.
감옥에서도 그랬습니다. 함께 감옥에 갇혀있는 고위관리들이 꿈을 꾸고 해석을 하지 못하여 답답해서 어쩔 줄 모를 때 요셉이 말합니다,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답니다!’
이 말을 듣는 이들 모두 놀랍니다. 저 사람의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그를 모신 저가 저렇게 똑똑하고 정직하고 깔끔하고 멋진가?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 하나님을 모신 요셉이 부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바로 앞에 불려갔습니다. 바로가 하는 말 이것 정말 잘 기억해야합니다. 마치 마귀가 요셉을 유혹하는 것 같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요셉, 다른 사람들에게 듣자 하니 <너는> 꿈을 잘 해석한다고 하더라.’ 라고 했을 때 요셉의 요셉 대답입니다,
‘아닙니다. 제가 아니고 나의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형통한 대답, 평안한 대답을 하실 것입니다.’
바로도 놀랐습니다. ‘저렇게 똑똑하다고 소문난 사람이 가만히 보니 저가 똑똑한 것이 아니라 저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께서 꿈의 해석을 다 주셨구나..’ 라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형들이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옛날에 요셉을 팔아먹은 일 때문에 보복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을 때 요셉이 한 말입니다. ‘형님들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님들은 나를 팔아먹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 선발대로 나를 이집트로 보냈습니다.’
여호수아, 요셉 둘 다 마음속에 가득한 하나님을 상대방에게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 간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생각하도록, 기억하도록, 각인되도록 힘쓰고 애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여호수아에게 가득 들어있는 하나님으로 인한 무게를 요셉의 삶의 무게로, 여호수아의 삶의 무게로 판단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무게에 따라 최고로 사랑하셨고, 최고로 형통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해주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 입에 무엇이 달려있습니까? 말할 때마다 제일 먼저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공부 잘해라, 건강해라. 이 사람 저 사람 이름 이야기하고, 땅 이야기, 부동산 이야기, 아파트 이야기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속에 아파트만 가득 들어있고 부동산만 들어있고, 땅만 가득 들어있고, 이사람 저 사람만 가득 들어있습니다. 세상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속을 하나님으로 채우십시오. 그냥 채우지 말고 가득 채우십시오. 이제 인생을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오래 전에 우리 교회를 다니다가 지방으로 가 있는 분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지난주에 나누었던 설교 말씀을 가지고 자기가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구구절절이 감사하는 내용과 이제 애들도 어느 정도 키웠으니 내가 그 근원을 바꾸면 내 인생이 바뀔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속을 바꾸어야합니다. 속에 있는 세상의 것을 다 없애십시오. 여러분 속을 하나님으로 가득 채우면 여러분 자신도 알지 못하게 그저 하나님이라는 소리가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고백의 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삶의 무게로 보시고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
그리고 여러분 속에 하나님으로 채워졌든 아니든 간에 관계없이 우선 당장 여러분의 입에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을 붙여보십시오. 입에 달아보십시오. 여러분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노래하고 하나님을 말하면 어쩌면 그것이 곧, 여러분 생각에 내 속에는 아직 하나님 없다고 생각하실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아니다, 이미 자네 속에는 나 하나님이 가득 있다고 판단 평가해주실 것입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확실하게 나는, 내 속에는 아직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 아직 채워지지 않다고 할지라도 먼저 입만 가지고 하나님 이름을 한 번 불러보십시오. 순서가 바뀌었어도 그것이 여러분의 가슴을 하나님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의 인생은 무게 없는 인생이 아니라, 혹 지금까지는 아무런 무게가 없고 의미가 없는 인생으로 살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점차 여러분 속을 하나님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
♣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항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1)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들의 장로들과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나이가 많아 늙었도다(2)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3) 보라 내가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 쪽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제비 뽑아 너희의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4)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5)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죄로나 치우치지 말라(6)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 중에 들어가지 말라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7)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까지 너희에게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9)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10)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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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 때 독재에 항거하여 야당의원들이 자주 시위도 하고 농성도 하고 단식도 했었습니다. 그 당시 정치권 안팎에서 어른 대접을 받던 원로 정치인 한 분이 단식을 하다가 탈진해서 쓰러졌습니다. 병원에 후송된 그 원로 정치인은 병상에서도 자기는 살만큼 살았으니 죽음으로라도 민주화를 이루고야말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 원로 정치인에게 후배 정치인 한 분이 문안을 갔습니다. 선배의 그 뜻에 감격한 나머지 그 후배 정치인이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선생님 같은 분이 이렇게 항거하다가 돌아가시면 이 정권은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후배 정치인의 그 말을 들은 원로 정치인이 후배를 빤히 쳐다보면서 이 말을 하더랍니다. ‘늙은이 하나 죽는다고 세상이 바뀌겠나, 자네 같은 젊은 사람이 희생한다면 몰라도……’
그 뒤의 이야기입니다. 그 원로 정치인이 기력을 회복해서 그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국회의원 후보 합동 유세장에서 상대방 젊은 후보가 이 원로 정치인을 두고 외쳤습니다. ‘여러분, 저 분은 그 동안 민주화를 위해서 고생도 많이 하셨고 연세도 드실 만큼 드셨으니 이제는 여생을 편히 보내도록 세대교체를 해드리십시다.’
그 뒤를 이어서 단상에 오른 그 원로 정치인이 제법 높은 연단에서 아래로 훌쩍 뛰어 내렸습니다. 충격이 있었든지 간신히 몸을 가누면서 다시 연단에 올라서서 청중을 향해서 이렇게 소리 질렀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래도 제가 늙었습니까?’
식품이나 약품의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말씀을 드리면서 조금 부끄러운 것은 오랫동안 저는 유통기한을 잘 안 지켰습니다. 아까워서 그랬습니다. 아직 쓸 만한 것 같아 잘 안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근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유통기한이 넘은 약은 약이 아니라 독이라는 말을 계속 교만하게 듣고 넘길 수는 없지 않는가? 이제는 나도 겸손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유통기한이 넘은 보조식품들을 폐기처분 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아까운 몇 가지는 아직은 남아있습니다.
유통기한은 약품이나 식품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도 아직 오래 쓸 만한 사람, 쓸 기간이 얼마 안 남는 사람 등 유통기한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기도 합니다. 요즘 제가 자주 고민하는 것은 분당소망교회에서 저의 유통기한이 이미 한참 지난 것은 아닌가? 그것도 모르고 빨리 비킬 생각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오래 전에 제가 집중적으로든 성경공부를 시작할 때 들었던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경 인물들의 생존기간입니다. 당시 생각에는 오래 산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오래 살았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적게 산 사람들은 그와 반대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더 보면서 꼭 그와 같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중 최고 어른인 아브라함은 백 일흔 다섯 살, 그 아들 이삭은 백 여든 살, 좀 아쉬움이 많은 야곱은 백 마흔 일곱 살 살았는데, 성경에서 절대로 그 무게가 더하지 않는, 성경에서 가장 형통한 인물 중 하나인 요셉은 그 분들보다 한참 적은 백열 살까지만 살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가장 형통한 인물 또 한 사람인 여호수아도 다른 사람들보다 짧은 백열 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특히나 신약의 그 귀한 하나님의 종 스데반은 참으로 아깝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서 뭇사람들의 칭찬을 받던 천사와 같은 스데반은 그 젊은 나이에 돌에 맞아서 그야말로 비명횡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와 정반대의 사람들도 찾을 수가 있는데, 여러분들도 성경을 함께 보면 좋겠습니다. 사사기 12장입니다. ‘입다 사사 다음의 베들레헴의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그가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을 두었던 그가 딸들을 밖으로 시집보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밖에서는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왔더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칠년이라 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 그 뒤를 이어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스불론 사람 엘론이 죽으며 스불론 땅 아알론에 장사되었더라 그 뒤를 이어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잇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그에게 아들 사십 명과 손자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칠십 마리를 탔더라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기 된 지 팔년 이라 비라돈 사람 헬렐의 아들 압돈이 죽으매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더라’(삿12:8-15) 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두 분의 사사, 8절에 나오는 입산, 그리고 13절에 나오는 압돈, 이 두 분의 사사는 육십 명의 아들, 사십 명의 자녀를 낳고 결혼을 다 시킬 정도로 상당하게 오래 살았습니다. 일 년에 한 명씩 보낸다고 해도 육십년, 또 사십년입니다. 이처럼 오래 살았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성경 기록에 의하면, 그렇게 오래 산 당시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요 하나님의 종으로 있으면서 그 분들이 한 것이라고는 뭐하나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아들 장가보내고 딸 시집보내고 또 낳고 또 그렇게 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거의 모든 사람이 태어나서 공부하고 결혼하고 자식 낳아서 시집 장가보내고 인생 마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고 오래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라는 생존 기간은 결단코 아닙니다. 길든지 짧든지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는가? 하는 삶의 무게입니다. 만약에 삶의 무게가 없다면 오래 산 것도, 오래 일을 한 것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아도 삶의 무게가 없다면 그 일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반대로 짧게 살고 짧게 일했어도 삶의 무게만 있다면 존귀한 한 인생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이것을 판단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십니다. 가장 정확하게 판단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판단하시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판단하신 결과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형통하게 해주셨는가?’입니다. 또 다른 것이 있기는 하지만 대표적으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에게는 형통하게 해주십니다. 이것은 본인이 제일 잘 압니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하나님의 은총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본인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형통한 것은 흔히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물질 혹은 건강, 자녀가 얼마나 잘 되었고 일에 성과가 있었고 일이 잘 풀렸는지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보다 형통하다, 하나님의 은총을 많이 받았다, 나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참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압니다.
한 번 돌아보십시오. 여러분들은 여러분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았다, 받고 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형통이라는 선물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물질과는 관계없고 건강하고도 별 관계가 없습니다. 자녀들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이런 것도 관계없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항상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챙겨주시고 나의 손을 잡고 이끌어주시고, 만약에 어떤 일이 있다 싶으면 하나님께서 조금도 지체하시지 아니하시고 이끌어주시는 사람인가 스스로 생각하는지 이것이 중요합니다. 어떻습니까?
성경전체에서 이견 없이 가장 형통한 사람이라고 평가되는 두 사람을 생각해봅니다. 요셉이고 여호수아입니다. 이 두 분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셨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3장은 여호수아가 죽을 때가 다 되었습니다. 1절에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이 늙은지라’(수23:1) 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호수아가 죽을 때가 되었을 때, 유통기한이 다 된 것을 압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을 불러 ‘여러분, 나는 이제 나이가 많이 늙어서..’ 물러가야한다는 유언적인 말씀을 합니다.
유언은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는 그 삶의 집약입니다. 그 사람 인격의 집약입니다. 그 사람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가? 한평생 살면서 별것 아닌 것들은 다 없어지고, 마지막에는 그 사람 인격의 진수만 남아있습니다. 그것이 유언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유언을 통해서 여호수아가 어떤 사람인지 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23장과 24장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이란 말을 합니다. 여호수아 속에 하나님만 남아있었습니다. 한 번 보겠습니다.
3절에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라고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하십니다. 또 5절에서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라고 말씀하시고, 8절에서도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라고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9절에서도 ‘이는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라고 말씀하시고 10절에서도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라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11절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라고 말씀하시고, 13절에도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14절 ‘보라 나는 오늘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서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은 마음과 뜻으로 아는지라’ 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너희에게 임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모든 불길한 말씀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절하기까지 하실 것이라’ 라는 15절 말씀처럼 두 번 나올 때도 많습니다.
16절에도 ‘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하니라’ 라고 또 있습니다.
이처럼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의 입에 달려 있습니다. 여호수아 입에 하나님이 붙어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수아 속에 하나님이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늘 부동산을 말하는 사람은 부동산이 그 속에 가득 있고, 돈, 돈, 돈 하는 사람은 그 속에 다른 것은 없고 돈만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6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눅6:43-45) 그 속에 있는 것이 입으로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의 입에는 첫 번째로 하나님이 달려있었습니다. 입에 하나님이 붙어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여호수아가 하나님 이라는 이름 앞에 계속 붙인 말이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 중에서 한 군데를 제외하고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의 가슴 속에 하나님이 가득 들어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 하나님을 후배들에게 자꾸 나누어주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하든 기억시키고 싶었습니다. 각인시키고 싶었습니다. 이 마음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나님 때문에 안온한 삶을 살고 많은 복을 받았는데, 내 아들도 내 손주도 그 하나님을 기억해서 나처럼 이런 복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가장 형통한 사람 여호수아가 말하고 있습니다. 백성들도 나처럼 이런 복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속에 들어있을 뿐 아니라 여러분도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여호수아에게 하나님 절대주권주의가 정말로 확실했습니다. 지금 땅을 분배하는데 있는 땅을 분배해야한 것이 아닙니다. 없는 땅,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그 땅 주인이 엄연히 있으므로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마치 제 것처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이지만 하나님께서 다 정복하게 해주셔서 여러분들의 것이 되게 할 것이라는 말을 자신만만하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해서 차지하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보라 내가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 쪽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제비 뽑아 너희의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4절) 라고 말합니다.
나누어줄 수 없는 남의 땅인데도 나누어주면서, 걱정하지 말라 이 땅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틀림없이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눈으로 본 그 대단한 모든 일들도 하나님께서 다 하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참 멋있습니다. 그냥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확신하고 있습니다. 자신 있게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어떻게 해서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의 무게가 어느 정도의 무게이냐? 저 여호수아 속에는 쓸데없고 무게도 안 나가는 지푸라기 같은 것들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쥐고 계시는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내가 여호수아를 형통하게 해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의 이런 모습이 성경에서 가장 형통한 또 한 사람 요셉에게 그대로 나타납니다. 똑 같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들어갔습니다. 보디발의 부인이 요셉에게 추근거립니다. 틈만 나면 요셉을 붙듭니다. 그때마다 요셉이 피합니다. 어느 날 심하게 붙들고 늘어지자 요셉이 단호하게 말합니다, ‘마나님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제가 어떻게 하나님께 죄를 짓겠습니까?’ ‘당신 남편에게 죄를 짓겠습니까?’ 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짓겠습니까?’ 라고 말한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깜짝 놀랍니다. 도대체 하나님이란 어떤 존재이기에 저 사람이 저토록 저러하냐? 생각했을 것입니다.
감옥에서도 그랬습니다. 함께 감옥에 갇혀있는 고위관리들이 꿈을 꾸고 해석을 하지 못하여 답답해서 어쩔 줄 모를 때 요셉이 말합니다,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답니다!’
이 말을 듣는 이들 모두 놀랍니다. 저 사람의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그를 모신 저가 저렇게 똑똑하고 정직하고 깔끔하고 멋진가?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 하나님을 모신 요셉이 부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바로 앞에 불려갔습니다. 바로가 하는 말 이것 정말 잘 기억해야합니다. 마치 마귀가 요셉을 유혹하는 것 같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요셉, 다른 사람들에게 듣자 하니 <너는> 꿈을 잘 해석한다고 하더라.’ 라고 했을 때 요셉의 요셉 대답입니다,
‘아닙니다. 제가 아니고 나의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형통한 대답, 평안한 대답을 하실 것입니다.’
바로도 놀랐습니다. ‘저렇게 똑똑하다고 소문난 사람이 가만히 보니 저가 똑똑한 것이 아니라 저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께서 꿈의 해석을 다 주셨구나..’ 라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형들이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옛날에 요셉을 팔아먹은 일 때문에 보복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을 때 요셉이 한 말입니다. ‘형님들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님들은 나를 팔아먹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 선발대로 나를 이집트로 보냈습니다.’
여호수아, 요셉 둘 다 마음속에 가득한 하나님을 상대방에게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 간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생각하도록, 기억하도록, 각인되도록 힘쓰고 애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여호수아에게 가득 들어있는 하나님으로 인한 무게를 요셉의 삶의 무게로, 여호수아의 삶의 무게로 판단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무게에 따라 최고로 사랑하셨고, 최고로 형통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해주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 입에 무엇이 달려있습니까? 말할 때마다 제일 먼저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공부 잘해라, 건강해라. 이 사람 저 사람 이름 이야기하고, 땅 이야기, 부동산 이야기, 아파트 이야기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속에 아파트만 가득 들어있고 부동산만 들어있고, 땅만 가득 들어있고, 이사람 저 사람만 가득 들어있습니다. 세상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속을 하나님으로 채우십시오. 그냥 채우지 말고 가득 채우십시오. 이제 인생을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오래 전에 우리 교회를 다니다가 지방으로 가 있는 분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지난주에 나누었던 설교 말씀을 가지고 자기가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구구절절이 감사하는 내용과 이제 애들도 어느 정도 키웠으니 내가 그 근원을 바꾸면 내 인생이 바뀔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속을 바꾸어야합니다. 속에 있는 세상의 것을 다 없애십시오. 여러분 속을 하나님으로 가득 채우면 여러분 자신도 알지 못하게 그저 하나님이라는 소리가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고백의 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삶의 무게로 보시고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
그리고 여러분 속에 하나님으로 채워졌든 아니든 간에 관계없이 우선 당장 여러분의 입에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을 붙여보십시오. 입에 달아보십시오. 여러분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노래하고 하나님을 말하면 어쩌면 그것이 곧, 여러분 생각에 내 속에는 아직 하나님 없다고 생각하실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아니다, 이미 자네 속에는 나 하나님이 가득 있다고 판단 평가해주실 것입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확실하게 나는, 내 속에는 아직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 아직 채워지지 않다고 할지라도 먼저 입만 가지고 하나님 이름을 한 번 불러보십시오. 순서가 바뀌었어도 그것이 여러분의 가슴을 하나님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의 인생은 무게 없는 인생이 아니라, 혹 지금까지는 아무런 무게가 없고 의미가 없는 인생으로 살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점차 여러분 속을 하나님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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