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말씀(설교 말씀)

지키는 길은.. (열왕기상 12:25-33)

분당소망교회 2021. 6. 25. 10:51

지키는 길은..

 

 

 

열왕기상 12:25~33

 

 

오래 전 우리나라에 재미있는 대중가요가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한 아가씨가 무뚝뚝한 총각을 짝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아는지 모르는지 반응이 없습니다.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가슴은 날이 갈수록 더 뜨거워졌습니다. 그 아가씨의 표현을 빌리면 볼도 뜨거워지고 입술도 불타는 듯 뜨거워졌습니다. 그럼에도 남자는 여전히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여자가 불타는 자기 심정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달래볼까 울어볼까 하소연해도, 아무리 당신이 목석이고 바보라 해도, 이토록 불타는 내 심정을 어떻게 그렇게 모를 수가 있습니까?

견디다 못한 아가씨가 안타까운 마음에 울면서 매달렸던 것 같습니다. 아가씨의 적극적인 대시에 남자가 드디어 답을 했습니다. 아가씨의 애탐에 남자가 보내온 답은 나는 본래 여자를 안 좋아합니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는 더 못됐던 것 같습니다. 옛날 그 노래를 들을 때, 자주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남자가 좋아할만한 아가씨라도 그랬을까?’ 제가 생각해봐도 제가 참 못됐었습니다.

 

그 후 한참 동안 그 노래를 잊어버리고 있다가 성경 사무엘상 마지막에 사울의 모습을 보면서 옛날 그 노래가 다시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큰 복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오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달래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고 겁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점점 더 어긋난 길로만 나갔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참다못해서 선언을 하십니다. ‘나는 이제 사울을 버렸다.’

그러나 어머니 되신 분, 아버지 되신 분들은 하나님의 그 말씀이 아닌 말씀이라는 것을 다 압니다. 누가 자식을 그렇게 버립니까? 하나님의 그 말씀은 사울을 정말 버리신 것이 아니라, 빨리 어서 속히 나에게 돌아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만 하면서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당시 블레셋은 이스라엘 힘으로서는 도저히 감히 감당할 수 있는 적수가 아니었습니다. 다급해진 사울이 옛날에 자기를 도와주셨던 때의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달려갑니다. 간절하게 찾습니다. 직접 자기가 하나님을 찾기도 하고,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을 찾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단히 화가 나셔서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울이 하나님이 정말로 자기를 버리셨나보다 생각하고 무당에게 달려갑니다. 그러다가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비참한 죽음으로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사울이 그때에 나름대로 애를 썼습니다. 자기 생각으로는 하나님께서 이미 나를 버리셨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혹시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실까, 내 기도를 한 번 다시 들어주실까 나름대로 애를 썼습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매달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무당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종을 찾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사울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고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생각해봅니다. 그 때 사울이 과연 그렇게 망할 수밖에 없었던가? 다른 수는 없었을까? 과연 길이 없었을까? 이것은 여러분들 누구에게라도 올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꼭 기억하시고 생각하셔야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선 확실하게 여러분들이 알고 짚고 붙들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항상 길이 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어떤 경우에도 잊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이 진리는 여러분들이 아무리 잘못하고 혹은 무서운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확실하고 변치 않습니다.

따라서 당연하게 당시 사울에게도 길이 있었습니다. 안 망할 길이 있었고 살 길이 있었고 그 위기를 복으로 만들 길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길은 매우 어렵고 힘든 것 같습니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집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길이 너무 많이 힘들고 고달픕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인생살이도 꼭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되게 쉽고 간단하고 편한 길이 있습니다. 몇 가지만 알면 됩니다.

 

사울에게 안 망할 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사울이 하나님께 확실하고 완전하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말로만 모양으로만이 아니라 진짜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어떤 사람이 나한테 오면 참으로 돌아왔는지 아니면 모양만 말만 돌아왔는지 나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오죽 잘 아시겠습니까? 확실하고 완전하게 하나님께 돌아갔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몇 번은 대답하지 않으시지만 찾고 또 찾으면 반드시 대답하십니다.

다시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아버지 어머니로서 좀 못 나고 잘못 된 자식이 여러분들을 떠났는데, 그러다가 다시 찾아오면 안 받아주시겠습니까? 안 받아주실 어머니, 아버지는 이 자리에 하나도 없고 다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것이 부모입니다. 그런데 완벽한 부모이신 하나님께서 그러실 리가 절대로 없습니다. 찾고 또 찾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언제 그랬냐는 듯 받아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안 지방에 가셨습니다. 이방 땅입니다. 이방인인 가나안 여자 하나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소리 지릅니다. “선생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무서운 병에 걸린 내 딸을 부디 치료해주십시오.” 예수님께서 아주 냉정하셨습니다. 과연 우리 주님께서 저러신가 할 정도로 한 마디도 대답 안 하십니다. 견디다 못해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너무 시끄럽습니다, 대강 처리해서 돌려보내시지요.’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병 치료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라는 것을 제자들이 알기에 그렇게 말씀드리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은 한 마디도 대답 안 하십니다. 그러시더니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에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내심을 받은 적이 없다.’ 주님께서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 불쌍한 여인이 와서 그렇게 도와달라고 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그 말씀을 듣고도 또 따라와서 이번에는 절을 합니다. ‘선생님,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더 악한 말씀을 하십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주는 일이 마땅하지 않다.’ 이 정도 되면 에이 하고 그냥 물러갈 것 같은데, 그 여인은 물러가지 않습니다. 여인은 옳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제야 예수님 본 마음이 나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금방 그 딸의 병이 나았습니다. 절대로 가나안 여인의 부탁을 안 들어주실 것 같았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 여인은 예수님의 그 본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계속 매달렸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비우로 말씀하십니다. ‘한 지방에 아주 악한 재판관이 있었는데, 그 동네에 불쌍한 과부가 있었다.’ 라고 말씀을 시작하셨는데, 여기서 과부는 남편 없는 사람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남편도 없고 도와줄 자식도 없고 기댈만한 것도 없고 재산도 하나도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 이 재판관을 찾아와서 제 원통함을 제발 풀어주십시오.” 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악한 재판관 그 과부의 부탁을 들어줄 리 만무하다. 자기에게 아무 도움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과부는 찾아와서 매달리고 또 매달리면서 귀찮게 하니 재판관이 이러다가 내가 말라 죽겠다. 차라리 얻는 것 하나 없어도 과부의 부탁을 들어주자고 생각하고 들어주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말씀하실 때, 여러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먼저는 여러분들은 그 과부와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본문의 사울 같으면, ‘사울은 그 과부와 다르다, 사울은 하나님께 도움이 되고 안 되고는 문제가 아니다..’ 사울은 하나님 당신께서 그렇게 사랑하는 당신의 아들이고, 이미 그 누구보다 더 사랑했던 첫사랑이었고,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복을 다 준 당신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악한 재판관, 못된 재판관, 불의의 재판관이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자식이고 그런 재판관, 그런 하나님이라면 사울이 찾아오고 또 찾아오고 매달렸으면 끝까지 외면하셨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사울이 할 것은 단 하나, 우선 당장 모든 것 다 제치고 하나님께서 대답하실 때까지 매달리는 것입니다. 찾고 또 찾는 것입니다. 이것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래 알았다고 말씀하시면 그 다음부터 그동안 부족했던 자기를 고쳐 나가면 됩니다. ‘내가 그렇게 매달렸을 때, 왜 한참동안 그렇게 대답하지 않으셨던가? 필경은 내가 하나님께 밉상 받을 짓을 많이 했다.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나님께 예쁘게 보이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그렇게 하기만 하면 됩니다. 처음부터 온전한 사람이어서 하나님께 돌아가는 그것은 어렵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급하면 우선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못된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도 대답하실까? 그것은 부모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냥 가면 됩니다.

 

이스라엘이 처음에 통일된 이스라엘 하나로 가다가 솔로몬 왕 다음 대에 남북으로 쪼개지고 말았습니다. 남북으로 분열되고 북쪽의 초대 왕으로 여로보암이 왕으로 등극합니다. 북쪽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왕이 된 까닭은 그가 그럴만한 사람이어서도 자기가 잘한 것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난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 죄는 여러분들이 꼭 알고 기억해야할 만하고, 여러분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자식들에게도 가르쳐주고 또 가르쳐주어야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

열왕기상 11장에는 1절부터 왜 하나님께서 나라를 쪼개서 여로보암에게 주셨는지 그 까닭이 나옵니다.

솔로만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왕은 후궁이 칠 백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왕상11:1-3)

누구든 형편이 좋아지면 이렇게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다시 유심히 보시라고 다시 읽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의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왕상11-3-4)

처음에는 자기가 이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도 못 이깁니다. 술에 장사가 없듯이 이길 수가 없습니다.

5절에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왕상11:5)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솔로몬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습니까? 한 번 미끄러지면 이렇게 됩니다.

아차 잘못 할 수 있습니다 얼른 돌아오면 됩니다. 실수 할 수 있습니다. 얼른 돌아오면 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잘못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때 돌아오면 됩니다.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돌아오면 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왕상11:6-7)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왕상11:9-10) 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오늘날은 기독교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신을 따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다른 신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돈이라는 신, 건강이라는 신, 자식이라는 신을 따릅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는 일들이 많습니다. 재산이 많아져서 살만하니 하나님을 떠납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심판을 내리십니다,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왕상11:10-11)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까닭은 여로보암이 잘해서도 아니고 잘 나서도 아니었습니다. 반사적 이익, 불로소득이었습니다. 한 것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가 한 것 없이, 잘 한 것 하나 없이 나라를 그저 얻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노력하겠지만, 아실 것은 그만큼 노력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잘 해서 이만큼 이루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노력을 많이 해서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머리가 똑똑해서 이만큼 이루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정도 사람들은 많습니다. 감옥 속에는 더 많습니다.

 

이 여로보암이 왕이 되니 너무 좋았습니다. 한 것 없이 나라를 얻었으니 더 그랬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생겼습니다. 백성들이 자기를 버릴까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일은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남쪽 예루살렘에 갔다가 마음이 변해서 자기를 배신할까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악한 꾀를 내는데, 이것이 하나님께 큰 죄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렇습니다. 내가 경제를 일으키고, 내가 정권을 잡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내가 정권을 잡았는지 그 까닭을 알면 어떤 역할이든지 제대로 할 수 있는데, 그 까닭을 모르고 어떻게 하든지 내가 그 자리를 지키려고 온갖 인간적인 방법을 씁니다. 내가 어떻게 이런 자리를 얻었는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 얻었는지 그것을 알면 되는데 말입니다.

여로보암이 그랬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해서 왕이 되었는지 알았더라면 절대로 그런 실수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생각하지 못하고, ‘내가 왕 자리를 지켜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악한 꾀를 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여기저기에 두고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분, 이제부터는 남쪽 예루살렘에 내려가서 제사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북이스라엘 금송아지가 있는 여기서 제사를 드리면 됩니다.’ 라고 선포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죄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한 번 죄를 짓기 시작한 여로보암의 죄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무섭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나라의 최고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한 번 빗나가기 시작하면, 한 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한 번 죄를 짓기 시작하면 한없이 나가게 됩니다. 자기 왕 자리 지키는 일이라면 저지르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그런 힘, 그런 애씀을 가지고 내가 어떻게 이런 왕 자리를 가졌는가? 어떻게 이런 좋은 자리를 가졌는가? 내가 어떻게 이런 재산을 모았는지 그걸 생각하면 얼마든지 지킬 수가 있는데, 못난 인간의 온갖 재주를 부려서 자기 재산을 유지하려고 하고 자기 정권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여로보암이 왕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정해놓은 절기를 자기 마음대로 바꾸고,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제사장도 자기 마음대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이 크게 착각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의 왕 자리를 지킨다고 생각했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정말로 나의 이 왕 자리를 지키려고 하면, 내가 어떻게 왕이 되었는가, 무슨 까닭으로 왕이 되었는가, 내가 이 정권을 어떻게 잡았는지 제대로 알면 되는데, 그야말로 인간적 재주로 지키고 유지하려고 하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왕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망하는 길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저주를 받아서 집안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고 말았습니다. 거기다가 이스라엘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역사에 두고두고 하나님께 범죄한 인물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이 그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강하게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신명기 8장에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면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8:12-14)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8:12-16)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런데 너희들이 그것을 모르고 네 능력과 네 손의 힘으로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까 두렵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12:18)

네가 잘 된 것, 네 재산, 너의 모든 것, 정권을 얻은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엄하게 경고하신 것이 신명기 8 19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십시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하나님의 이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100% 확고하게 유효합니다.

 

여로보암에게 이스라엘을 나누어서 나라를 주신 것은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실 때, 너는 솔로몬이 지은 죄를 절대로 짓지 말라는 바람이었습니다. 분명하게 했습니다.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항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왕상 11:38)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로보암이 왕이 되고 난 후 무엇보다도 힘써야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솔로몬이 하나님을 경외하다 버린 것, 그 하나님을 경외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면 다른 재주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왕 자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못된 재주를 안 부려도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마지막 실패했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것만 하면 되었는데, 여로보암은 왕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한 것이 솔로몬을 망하게 했던 하나님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네가 네 집에 재앙을 내려서 너 집에 속한 모든 남자는 어떤 남자든지 간에 다 끊어버리고 거름더미같이 쓸어버리겠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어놓고도 어떻게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지금도 상당히 많습니다. 못난 하나님의 종이 볼 때 겁이 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까닭을 잘 알아야할 텐데, 좀 잘 알았으면 좋겠는데.. 걱정이 됩니다. 못난 종이 그 정도 걱정되는데, 하나님은 얼마나 걱정이 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경제적으로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시고 혹은 이런 저런 복을 주셨는데 저러다가 망하지, 바로 해야 할 텐데 걱정이 많습니다.

시편 127편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127:1-2) 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 시를 누가 썼습니까? 솔로몬이 썼습니다. 솔로몬이 진작 이것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안 망했을 것이고, 그렇게 불명예를 뒤집어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 자식들 그렇게 고생 안 시키고 백성들 그렇게 고생 안 시키고 불행을 남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분당소망교회 창립 23주년 기념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참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정말로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하나님의 은혜에 최고의 감사는 무엇이겠습니까? 기념을 하고 헌금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최고의 감사는 우리 교회가, 교우들 한 분 한 분이 철저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이것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끝까지 우리 교회는 또 우리 교회에 속한 교우 여러분들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교회를 섬겨나갈 때에 세상 방법, 인간 재주를 부리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뿐만 아니라 내 사업뿐만 아니라 나의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이것을 알고 모든 노력은 다 하시되, 궁극적인 핵심은 내 사업도 내 건강도 내 자식도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아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교회일도 여러분의 가정일도 또 다른 일도 모든 노력은 다하되, 세상 방법으로 하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인간적인 재주 부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 때문에 망합니다. 여로보암도 망했고, 앞으로 어떤 정권도 그런 짓 하다가 망합니다. 여러분들이 갈 길은, 우리 교회가 갈 길은 단 하나, 하나님을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때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경제문제, 건강문제, 자녀문제가 있을 때 항상 나에게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노래를 하십시오. 이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해야 할 노력을 덜 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노력을 하십시오, 더 다하십시오. 그러나 그러면서도 고백하십시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안 해주시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행복합니다. 자녀들에게 가르치십시오. 그러면 어떤 환경, 어떤 상황, 어떤 여건에서도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자녀들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